KYEONGAH MIN
OCTOBER 30 - NOVEMBER 30, 2025
틈 Interstice
아트 602는 첫 전시 틈 Interstice을 통해 동시대 한국 작가가 구현하는 정체성과 시대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민경아의 작업은 현실과 초현실, 동양과 서양,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전개되며, 그 사이의 틈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사유의 장으로 기능한다.
동시대 미술에서 이미지의 본질은 고정된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맥락과 관계망 속에서 새롭게 생성된다. 민경아의 작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의 이미지를 재배열하거나 이질적인 도상을 충돌시킴으로써 원래의 의미를 흔들고, 관람자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차용과 패러디라는 현대적 표현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그의 작품은 정체성과 관계, 존재론적 사유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이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책거리 양식의 현대적 차용이다. 책거리는 조선시대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유행했던 정물화 형식으로, 지식과 욕망, 변화를 담아낸 한국 고유의 회화적 구조이다. 민경아는 이를 해학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예술의 본질이 결코 평면적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책거리 속에 마련된 틈과 공백은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비워야 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여우는 민화와 전래동화의 맥락을 이어받아 한국적 정체성을 환기한다. 피노키오의 코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드러낸다. 다양한 오브제의 조합은 우연과 계획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진실과 거짓, 솔직과 위선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
민경아의 작업은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설치 작업으로 확장된다. < 아티스트북(artistbook) > 연작은 종이와 판화의 물질성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텍스트, 구조와 의미를 결합한다. 이 작품들은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철학에서 언급되는 ‘공백(void)’의 개념을 집합론적 시각으로 풀어내며, 이미지가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의 장을 생성한다. 나아가 성서적·신화적 서사를 전유하면서도, 그것을 자기 성찰과 동시대적 맥락으로 재배치하여 관람자가 본질과 정체성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미와 추, 공허와 무의식은 각기 본질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민경아에게 본질은 단일한 규범이 아니라, 관람자를 끝내 사유하게 만드는 틈 그 자체이다. ‘틈(Interstice)’은 바로 그 지점에서 동시대 한국미술이 전통과 현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속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간다.